생각들

치밀함을 버리고 유연하게 살아가기

류현우 Ed Ryu 2023. 2. 28. 17:40

 직장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많은 식견과 이를 근거로 쌓은 치밀하고 견고한 이론은 언제나 나의 자산이자 큰 무기였다.

큰 로드맵과 일정만을 가지고 아래에서부터 천천히 쌓아나가 설계할때도 그렇고, 갑작스럽게 발생한 어떤 일로 인해 긴급한 상황 판단이 필요할때도 마찬가지였다. 때로는 단단하게 때로는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모든 확신은 모두 내가 현재 상황을 치밀하게 잘 알고있다는 자신감에서부터 나온 것이었다. 

 

 어떨 때는 사람의 심리를 계획적으로 교묘하게 이용하기도 했다. 가면을 쓰고 의도적으로 유하게 대하거나 의도적으로 강하게 대처하는 것이 내가 사회 생활을 하면서 사용했던 나의 무기였다. 일종의 페르소나와 같은 나를 여러개 설정하고 이를 상황에 따라 교묘하게 사용하고 치밀하게 나에 대한 이미지를 구축해나갔다. 

 

 비단 일 뿐만이 아니었다. 친하고 편한 관계에서 나는 심지어 내가 좋아하는 운동이나 게임을 할때도 결과를 지향하고 그에 대한 상세한 계획을 세우는 버릇이 있었다. 다양한 가능성과 변수를 모두 염두에 두고 직관에 따라 가장 높은 가능성을 선택하는 나의 판단. 그건 내가 잘 할 수 있는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내가 요새 깨닳은게 있다. 내가 가진 장점에 취해, 그늘에 가려진 약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무언가를 해왔다는 점이다.

 

 먼저, 내가 가진 장점은 반대로 어떤 부분에서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었다. 여기 빈공간 없이 아주 치밀하게 설계된 전자제품이 있다고 가정하자. 제품으로써 아름답고 뛰어날 수 있지만, 확장성이라는 다른 측면에서 고려해보면 전혀 제공해 줄 수 없는 제품이다. 시스템도 마찬가지다. 나는 처음부터 치밀하게 설계하고 설계도 기반으로 프로덕트를 완성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결과만 놓고 보면 사소한 디테일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렇게 사소한 완성도를 챙기면서 모든일을 계획하고 통제하에 두려는 성향은 그 일을 수행하는 사람이나 다른 사람에게 있어 큰 부담이 되었을 뿐이었다. 심지어 이 일을 계획하고 수행하는 나조차에게도 큰 책임이었고 이는 부담으로 작용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은 그때 치밀하게 설계한 그 프로덕트와 지금의 프로덕트는 너무 많은 차이가 생겨버렸다는 점이다. 

 

 한편으로, 나는 나와 다른 사람의 단편적인 관계에만 집중했었다. 즉 나와 그 사람의 관계에서 업무적으로 획득할 수 있는 실리에 집중한 나머지 이런 나의 모습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춰졌을지에 대해 지금까지는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결코 의도하지 않았지만, 돌이켜보면 내가 갑의 위치에 있다고 생각했을때 내 모습이 떠오른다. 때로는 그 지위를 이용해 달콤하게 상대를 유혹하고, 남들이 보는 앞에서 모욕을 주기도 했다. 적고 보니 싸이코같지만 정말 그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을 추진하고 앞장서는데 있어 계획적인 부분은 여전히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앞으로 나는 내가 일을 대하는 태도 자체를 조금은 바꿔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다. 

 

 인생이 늘 그렇듯, 일도 절대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더라. 계획대로 흘러가는 것 처럼 보여도, 어딘가 살짝 우회하거나 꼬인 곳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게 흘러가는 방향만 대강 맞으면 굳이 들쑤실 필요가 없지 않나라는 생각이다. 뒤돌아보면 그 계획대로 진행된 일이 있기나 했나 싶다. 그렇다고해서, 결과를 만드는데 큰 영향을 끼쳤나 생각해보면 모두 아니라는 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그래서 앞으로 내가 계획을 대하는 태도는 "큰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여러 선택지를 만드는 것"으로 한정하려 한다. 치밀한 계획도 중요하고 내가 잘 할 수 있는 영역 중 하나이지만, 이는 여러 선택지 중 하나이며 결과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지 않는 다는 점이다. 그리고 나는 그걸 "치밀함을 버리고 유연하게 살아가기" 라고 한마디로 정의했다. 그리고 그걸 바로 이 포스트의 제목으로 선정했다.

 

 간혹 누군가 나에게 계획적이고 치밀함과 꼼꼼함이 네 강점이다 라고 말하면 사실 나는 인정하지 않는 편이다. 그냥 그런 척을 하는 것일 뿐. 그리고 그냥 그런척을 하는 내 자신의 "쿨한" 모습에 취해 정작 중요한 본질이 흐려질 때가 있었다. 그리고 그런 내 태도가 남들에게 간파당하면 굉장한 부끄러움을 느꼈다. 부끄러움을 느낄 위선적인 행동을 왜 했을까? 좀 더 날것의 나로도 충분하도록 만드는 것. 나에게 가면을 씌우지 않고 유연하고 너그럽게 대하는 것. 그게 앞으로의 나를 대하는 나의 태도가 되면 좋지 않을까.

나는 나의 가장 친한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