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안, 컨설팅뿐만 아니라 프로덕트를 기획·설계하는 모든 프로젝트에 있어 우리는 필연적으로 시장상황과 타 경쟁사에 대한 외부분석 단계를 거치게 된다. 외부분석 시 우리는 현재 외부 상황과 맞물려 내부적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와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사용하게 되는 지 도출할 수 있다. 또는 여기서 분석한 결과를 기반으로 결과물 자체의 사상을 마련하기도 한다.
사실 이러한 형태의 보고서에서 분석결과물은 이미 정해진 최종 방향(=Object) 에 맞춰 가설을 입증하기 위한 근거로 활용될 확률이 매우 높다. 따라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면 이 외부분석 단계에 있어 편견이 생기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쉽게 설명하면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도움이 되는 자료는 문서에 채택되고, 그렇지 않은 자료나 불리한 자료는 채택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한다. 예컨데 영향이 되는 변수들을 최대한 제거하여 객관적인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분석기법 중 하나로 특정 집단군의 고객만 분석하는 "코호트 분석"이라는 기법을 사용하는데, 이 경우 실험자는 변수(시간, 특성...)를 임의로 선정하고 제거하여 결과물에 손쉽게 bias가 생기도록 만들 수 있다. 경험상 이러한 논증과정에 있어서 Framework가 없는 조직이나 프로젝트가 더더욱 이러한 함정에 빠지기 쉬웠다.
실제 프로젝트를 착수하고, 분석설계 단계를 진행하게 되면 우리는 거창하고 거시적인 방향성 설정이 아니라 조금 더 미시적인 관점에서, 예를 들면 기능이라던지 디자인이라던지 사용성이라던지 하는 관점에서 프로덕트를 마주하게 된다. 방향성과 사상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사용했던 시장상황이라던지 경쟁자의 강점이나 문제점 같은 항목들은 상대적으로 중요성이 줄어들고, 앞서 수립한 프로덕트의 방향성 위주로 기능을 설계하게 된다. 즉, 지금 설계한 기능이 앞서 정립한 프로덕트의 사상과 일치하는지 여부를 중점적으로 검증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흔히 빠지게 되는 함정이 잘나가는 경쟁자의 문제점을 위주로로부터 인사이트를 획득하려는 것이다.
유사한 시장에서 선도적인 포지션을 차지하고 있는 프로덕트의 경우 고객에게 선택되기까지 저마다의 이유가 존재할 것이다. (심지어 아주 형편없는 프로덕트라도, 시장에 다른 대체제가 없다면 고객은 선택할 것이다.) 문제는 그 이유를 정확하게 찾아서 우리의 프로덕트까지 반영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을 투자해 조사하고 이를 기반으로 인사이트를 도출하기 위한 고차원적인 사고력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문제점을 찾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다. 프로덕트에서 제공하지 않는 부족한 점을 찾아내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추출한 문제점을 가지고 새로운 니즈를 창출하는 것은 다른 얘기다.) 그러나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인사이트 도출 과정에 있어서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따라서 이러한 과정을 진행하는데 있어 문제점보다는 강점을 위주로 파악하라고 제안하고 싶다. 다수의 선례가 가진 강점을 위주로 보게되면 유사한 프로덕트들이 가지는 유사성을 통해 하나의 거대한 맥락을 인지적으로 마주하게 된다. 앞서 얘기했듯 이러한 과정을 거치는 것은 작업자로 하여금 많은 사고를 강요하게 한다. 다만 결과물의 품질과는 상관없이 이러한 스탠스 자체가 프로덕트 기획이라는 진행 단계에 있어 문제점을 파악하려는 스탠스보다 더 필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그 맥락과 결을 이해하고 프로덕트의 사상과 정렬시켜 잘 녹일 수 있는 능력이, 문제점을 찾고 개선하는 능력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나는 찾은 문제점을 개선하는 과정에 있어서도 프로덕트의 전체 사상과 일치하는지를 먼저 확인 후 반영하라고 말하고 싶다.
실패한 프로덕트를 보면 우리는 얻을 수 있는 것이 많다. 흔히들 반면교사라고 한다. 허나 우리는 왠지 모르게 이런 실패한 프로덕트를 마주하는걸 터부시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버려진 집,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 눈을 뜨고 죽은 시체를 보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든다. 리서치 과정에 있어서도 실패한 프로덕트는 조사 대상조차 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다만, 의외로 이런 프로덕트들의 경우 저마다의 명확한 강점을 가지고 시장을 타겟팅하여 출시한 흔적이 존재한다. 망한 이유는 천차만별이다. 여기서 우리는 천차만별인 문제점을 가지고 취합하여 공통적인 요소 - 즉 인사이트를 추출하기 쉽지 않다. 결과적으로 파편화된 feature들만 도출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나는 여기서도 비교우위를 가지고 있는 강점을 위주로 프로덕트를 파악하라고 말하고 싶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강점을 알게되면 프로덕트가 가진 전체적인 맥락과 사상을 이해하게 된다. "이게 왜 안됐을까?" 라고 고민하는 것은 그 맥락과 사상을 이해한 후에 정리해도 늦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이러한 경쟁자 분석 과정에 있어서 강점을 위주로 바라보는 스탠스가 오히려 우리 제품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포지셔닝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능은 그 다음이다. 프로덕트의 포지셔닝과 설계한 기능이 일치하는지 검증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3줄 요약
1. 경쟁사 분석 시 제품의 문제점보단 강점을 위주로 접근해서 분석해야 한다.
2. 실패한 제품을 분석하는 것도 두려워 하지 않아야 한다.
3. 여기서 획득한 인사이트를 기반으로 우리 제품에 잘 녹일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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